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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똥

참빛사랑 2023. 4. 24. 13:38

1968년 4월 24일 (1897~1968 향년72세)
할아버지는 지구별 여행 마치고 떠나셨다.
55년 전 그때 나는 달구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달구똥            보성문학 제30호(2019) 게재

김현호

  여덟 살 무렵부터 양호는 닭을 잡았다. 무당의 작두날처럼 섬뜩하게 차갑던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볕이 텃밭과 양지 녘에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봄볕이 어찌나 포근하고 보드라운지 암탉이 알을 품지 않아도 병아리가 깨일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양호에게 닭 잡는 법을 가르쳤다.

  "닭 모가지를 오로케 비틀어서 죽을 때까장 꽉 쥐고 있어야 쓴다. 쪼까 쥐고 있다가 죽었것제 하고 손을 놔 불먼 안돼야 야. 도로 살아 붕께 낭중에 발악을 하다가 축 늘어질 때까장 솔찬히 오래 쥐고 있어야 하는 뱁이여. 알것냐?"

  "예, 할아부지."

  양호는 고분고분하고 수말스런 아이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전수 장학생? 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닭 잡는 것뿐만이 아니라 초가지붕의 맨 윗부분을 덮는 용마름을 트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목이 비틀려 움켜잡혀 있던 늙은 암탉은 두 다리를 힘껏 뻗대며 바들바들 최후의 발악을 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모가지를 비틀어 틀어쥐고 있던 손을 놓고 닭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깃털이 하나하나 뽑혀 나가자 닭살 돋은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불을 지피고 닭살에 남아있는 잔털을 그을려 태웠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깃털이 타는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들었다. 닭발을 불에 그슬려 딱딱한 껍질을 손으로 훑어 벗겨냈다. 노란 장화처럼 닭의 신발이 벗겨지니 닭똥이 묻어 거뭇하던 닭발이 깨끗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능숙한 손길로 식칼을 들어 암탉의 배를 갈랐다. 기름져 알도 낳지 못하는 늙은 암탉의 뱃속엔 노란 기름 덩이로 꽉 차 있었다. 할아버지는 양호에게 모래주머니며 콩팥, 허파, 간, 창자 등 장기의 이름을 자세히 알려주었고 손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모래주머니 안엔 닭이 쪼아 먹은 먹이와 소화를 돕는 모래가 같이 들어 있다. 빨래판같이 거친 주름이 잡힌 노란 막이 붙어 있는데 모래주머니에 온기가 있을 때 떼어 내야 한다고 했다. 식으면 잘 떼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모래주머니를 모로 세워들고 칼집을 깊이 내어 벌리자 먹이와 모래가 뒤섞인 달구똥이 쏟아지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닭 창자의 한쪽 끝에 칼끝을 대고 왼손 검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창자를 조금씩 칼 쪽으로 잡아당겨 창자를 갈랐다. 물로 창자의 달구똥을 씻어 평평한 돌판 위에 올려놓고 소금을 뿌려 빨래하듯이 주물렀다. 두어 번을 그렇게 해야 창자에서 달구똥 냄새가 사라진다고 했다. 양호는 할아버지의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바삐 움직이며 닭 잡는 할아버지의 손놀림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었다.

  “할아부지! 닭은 날개가 있는디 왜 잘 못날라?”

  “닭도 날개가 있승께 삐둘구나 독수리 맹키로 날라 댕길 수 있는디, 나는 못난 닭 못난 닭 함시롱 자포자기를 해붕께 못 날라 댕기는 것이여.”

  닭도 날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양호는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인가 담장 위에서 마당으로 날아내리는 닭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닭도 부지런히 나는 연습을 하면 비둘기처럼 독수리처럼 멋지게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할아부지! 나도 날개가 있었으먼 좋것어. 새 맹키로 하늘을 맘대로 날라 댕기먼 겁나게 좋을 것인디…….”  

  “날라 댕기고 잡프냐?”

  할아버지는 양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고 양호는 날고 싶냐? 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새처럼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와 양호가 잡은 늙은 암탉은 닭죽이 되어 그날 저녁 온 식구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었다.

  언젠가 양호의 어머니는 양호에게 태몽을 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땔삭 큰 비앵기가 퍼렁 불빛을 깜빡깜빡 함시롱 소리도 없이 날아 오등마 포대기에 쌔인 아그를 나한테 내래 주고 가드라. 그 포대기럴 떠둘러 봉께 오동포동한 아그였는디 귄이 짝짝 흘르드라야! 고것이 니 태몽이였어야.”

  그 태몽을 생각하며 양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닭이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멋지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닭도 날 수 있다는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양호도 그 닭처럼 날고 싶었다. 양팔을 벌리고 날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닭을 쫓아 달음박질하며 두 팔을 힘껏 저어 보았다. 그러나 맘먹음대로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새처럼 번개아톰처럼 날고 싶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날 수가 없어 양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닭은 양호를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주저앉아 울고 있는 양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날고 있었다.

  “다 큰 놈이 이불에따 오짐을 싸먼 워찍해!”

  어머니의 호통 소리에 잠이 깬 양호는 그때야 비로소 간밤에 꿈만 꾼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깨가 홀랑 벗겨진 채 순이 집에 가서 소금 받아 오라며 방 밖으로 내쫓겨졌다. 차마 또래인 순이 집에 가서 소금을 받아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소금을 받으러 순이 집에 그것도 벌거숭이인 채로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창피할 일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더구나 순이 입은 닭털같이 가벼워서 학교에 소문이 금세 쫙 퍼질 게 분명했다. 대문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냥 방으로 들어갈 수 없어 마당 한 편에 엉거주춤 서서 울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대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할아버지를 발견한 양호는 어깨를 들썩이며 더욱더 서럽게 울었다. 논의 나락이며 밭의 곡식들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 할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논밭을 둘러보고 논두렁의 이슬을 털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양호가 울고 있는 연유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벌거벗은 채 울고 있는 양호 앞에 쪼그려 앉으며 등을 돌려댔다.

  “우지마라. 괜찮해야.”  

  울먹이고 있는 양호를 어르느라 할아버지는 벌거벗은 양호의 엉덩이를 연신 토닥였다. 할아버지 등은 더없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양호의 편이었고 천군만마와 같은 든든한 백이었다. 양호는 기꺼이 백마가 되어 준 할아버지 등을 타고 방안으로 입성했다. 어머니는 양호를 더는 닦달하지 않았다.

  양호의 집엔 열댓 마리의 닭을 키우는 꽤 큰 닭장이 있었다. 철망으로 둘러친 닭장 안엔 작은 문이 달린 닭들의 숙소가 있었고 서산 너머로 해가 지면 닭들을 그 숙소로 몰아넣고 문을 밖에서 닫아걸었다. 그걸 깜빡한 다음 날 아침엔 닭이 한두 마리씩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곤 했다. 할아버지는 쌀가지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했다. 저물녘이면 숙소로 닭들을 몰아넣는 번거로운 일을 거르지 못하는 것은 걸핏하면 닭을 잡아가는 그 살쾡이 때문이었다.
  닭 모이를 주는 일이나 암탉이 날마다 낳는 알을 꺼내오는 일은 늘 양호의 몫이었다. 양호는 닭장에 관한 모든 것을 할아버지와 둘이서 도맡아 하고 있었다. 명절이나 제삿날이 오면 할아버지의 지휘하에 닭을 잡았다. 할아버지는 양호에게 그날 잡을 닭을 지목해 주었다.

  “쩌그 저 배슬이 도톰하고 터럭이 볼그족족한 묵은 닭을 잡어야 것다.“

  "근디 할아부지 묵은 닭이 뭣이여?"

  "잉, 저 묵은 닭은 배에 지름이 차서 알도 못 낳는 닭이제. 그랑께 저놈을 잡어야 쓰겄다. 닭장으로 살금살금 드러가서 쭉지를 얼렁 낚아채서 야물딱지게 틀어쥐어야 한다잉."

  양호는 임무를 부여받은 특공대원처럼 살금살금 닭장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닭들은 눈치를 챘는지 아니면 할아버지와 양호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날지도 못하는 날갯짓을 해대며 도망 다니는 통에 사로잡기가 쉽지 않았다. 늙은 암탉은 제 운명을 아는지 사력을 다해 도망쳤고 양호는 날개를 퍼덕이며 종횡무진 내닫는 닭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달구똥을 밟고 미끄러졌다. 신고 있던 고무신이 벗겨지고 달구똥이 맨발바닥에 물컹하게 느껴졌다. 쫓고 쫓기는 끈질긴 추격에도 닭을 잡지 못하자 할아버지는 양호에게 닭을 숙소로 몰아넣으라고 했다. 닭을 몰아넣고 양호도 비좁은 닭의 숙소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다.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닭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있었고 양호는 할아버지가 지목한 그 암탉을 찾아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닭의 따뜻한 체온이 손끝에 느껴졌다. 바동거리는 닭의 심장 박동이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양호는 의기양양 격앙된 목소리로 "할아부지 잡었어요."라고 외쳤다. 양호의 손에 들린 닭을 본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닭이 아니라고 했다.

  "배슬이 도톰하고 터럭이 볼그족족한 살진 놈 안 뵈이냐?"

  양호는 손에 들려 바동거리는 닭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몇 발짝을 비틀거리며 걷다가 무른 똥을 찍 갈기고는 꼬꼬댁거리며 달아났다. 양호는 비좁은 닭의 숙소에 다시 들어갔다. 날마다 달걀을 꺼내오기 위해 드나들던 곳인데 오늘은 유난히 달구똥 냄새가 역겨웠다. 어둠침침한 닭의 숙소 안을 두리번거리며 할아버지가 지목한 닭을 찾았다. 무리 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숨어 있던 그 닭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아까 놓아 준 닭을 잡았던 것처럼 그 닭을 움켜잡고 나왔다. 양호의 손에 두 날개를 잡힌 암탉은 발버둥을 치며 허공에 연신 헛발질을 해 댔다. 명절 때나 식구들의 생일 때 닭 잡는 일은 어김없이 양호의 몫이 되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양호를 불렀다.
  “양호야!” “닭장에 들어가서 알 쪼까 꺼내 오니라.”

  여섯 살 터울의 형이 있었고 두 살 아래 동생이 있었지만, 달걀을 꺼내오는 일은 날마다 양호의 몫이었다. 달구똥을 밟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닭장에서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알을 꺼내오는 일은 수말스러운 양호에게도 때로는 썩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 알들은 암탉이 품어 세이레가 지나면 병아리가 되기도 하고 어쩌다 맛보는 따뜻한 쌀밥에 날달걀을 깨 묻어 비빈 고소한 비빔밥이나 입안에 살살 녹는 계란찜이 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양호의 어깨너비가 닭의 안방으로 통하는 문보다 넓어졌을 무렵, 양호는 한 꾀를 내었다. 형제가 여럿인데 왜 나만 맨날 달구똥 냄새를 맡으며 달걀을 꺼내 와야 하는지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내색하진 않았고 부쩍 커버린 자신의 몸을 핑계 삼아 이 일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느 날 양호는 닭장에 알을 꺼내러 갔다가 닭의 안방 문에 어깨를 걸친 채로

  “할아부지 인자 내 어깨가 넓어서 못 들어 가것어 봐봐.”라며 핑계를 대어 어떻게든 달걀을 꺼내오는 일을 졸업하고자 했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있으니 그 일을 그에게 물려주고 싶은 심산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미소 띤 얼굴에 긴 수염을 어루만지며 양호에게 말했다.

  “어깨럴 모로 돌려라.”

  달구똥 냄새가 싫어 달걀 꺼내오는 일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양호의 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양호가 열 살이 되던 해였다. 양호에게 처음으로 닭 잡는 법을 가르쳤던 그날처럼 따스한 봄날 할아버지는 양호의 곁을 떠나갔다. 여러 형제가 있었지만 유독 양호를 곁에 두고 잔심부름을 시키고 뭔가를 가르쳐 주려 했던 할아버지. 참으로 지혜로우셨고 인자하셨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홀연히 떠나시려고 어린 양호에게 서둘러 닭 잡는 법을 가르치셨는지도 모른다.
양호는 할아버지로부터 닭 잡는 법을 배우면서도 그것이 두렵다거나 징그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또래에게 싸움 한 번 걸어본 적 없는 유순한 성격인데 어쩌면 잔인하게 생각되는 닭을 잡는 일을 곧잘 했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호의 성격이 특별히 포악하고 잔인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처한 환경에 지배받고 그 환경에 적응해가기 마련인 모양이었다. 누구든 아마존의 밀림에서 조에족으로 태어났더라면 아랫입술을 뚫어 뽀뚜루라는 나무막대를 끼우고 벌거숭이인 채로 원숭이를 잡아 구워 먹으며 살아가지 않았겠는가? 이렇듯 사람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따라 삶의 양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골이라는 태생적 환경 때문에 양호는 할아버지로부터 닭 잡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이제 양호는 할아버지로부터 못다 배운 삶의 지혜를 세월 속에서 배워가게 될 것이다. 뜻하는 바를 이루어 가슴 벅찬 날도 있을 것이고 때론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할 것이다. 어찌 됐든 그는 스스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해 갈 것이다. 어린 시절 닭장 문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양호는 통과하기 어려운 좁은 문을 만나게 될 때 “어깨를 모로 돌려라.”는 할아버지의 교훈을 떠올릴 것이다. 닭도 날 수 있다는 희망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 양호의 마음 한구석은 빈들처럼 허전하고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한동안 휑했었다. 양호에게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기댈 언덕이었던 할아버지. 유독 할아버지 생각이 간절한 때는 개나리 진달래 피는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양호에게 닭 잡는 법을 처음 가르쳐 주었고 닭도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일깨워 주었다. 할아버지가 그리운 봄날이면 꿈속에서 멋지게 날아다니던 닭을 떠 올리며 양호는 종이비행기를 접어 하늘로 날리곤 했다.

  땅 위에서 보는 하늘이 저리 고운데 하늘에서 땅을 보면 어떨까?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양호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양호에게 있어서 종이비행기는 단순한 종이비행기가 아니었다. 그의 꿈을 싣고 나는 희망이었다.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기 훨씬 전부터 사람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양호는 꿈을 꾼 후 유난히 새나 비행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항공기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게 되었고 부력 양력 항력 풍동 같은 단어를 알게 되었다.  

커다란 사과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시골에서 광주로 유학한 양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학동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처음엔 고3인 여섯 살 터울의 형과 자취를 하다가 형이 서울로 취업을 나가자 6촌 형과 둘이서 자취를 했다. 아침밥은 언제나 그 형이 했고 형보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오는 양호는 늘 저녁밥을 지었다. 쌀을 씻어 솥에 넣고 손등에 찰랑하게 물을 붓고 석유곤로에 불을 붙였다. 불 조절을 잘못하여 죽밥을 하거나 밥을 태워 먹기도 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맨 된장을 풀어 국을 끓였고 집에서 가져온 김치가 동이 나면 동명동 도내기시장에서 가느다란 비닐봉지에 담아 팔던 김치를 백 원어치씩 사다 먹기도 하고 간장에 밥을 비벼 먹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식량이며 반찬을 가지러 시골집에 내려가곤 했었는데 어느 토요일, 지금은 없어져 버린 남광주역에서 열차를 타고 시골집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중절모를 쓴 말쑥한 양복 차림의 노신사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양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혼자 어딜 가느냐?”
  “몇 살이냐?”
  “어디 사느냐?”

  노신사가 묻는 말마다 양호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마 형들과 자취한다는 말도 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노신사는 커다란 사과 한 개를 내게 건네주었다. 양호는 여태껏 그렇게 크고 탐스럽고 때깔 좋은 사과를 본 적이 없었다.

  “넌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형들과 자취한다는 말에 어린 양호를 짠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열차는 덜커덕거리며 달려가고 양호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가을 들녘의 풍경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이양역에 도착한 열차는 한나절 늑장을 피우고 있다가 기적을 한 번 울리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보성역에 도착했을 땐 집으로 가는 금성여객 막차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어두워져 가는 길을 따라 쟁골재를 넘어 걸어서 집에 가야만 했다.

  쟁골재는 보성읍 봉산리 온수마을에서 회천면 화죽리 서동 저수지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보성장에 갈 때 엄마 손을 잡고 두어 번 오갔던 산길이었다. 열네 살이었던 소년에게 삼십 리 밤길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가야 했다. 희미한 달빛이 좁은 산길에 내려앉아 있어 길을 찾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노루인지 산토끼인지 산 짐승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달아났다. 나도 놀라 발길을 멈추었다.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아 여러 번을 뒤돌아보았다. 풀벌레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멀리 두견새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묘 옆을 지날 때는 왠지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터덕거리며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꼬두메의 기억

  봄이면 매화꽃이 곱게 피는 광주 산수동 산동네 꼬두메는 양호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자취했던 곳이었다. 명문고에 다니는 고향의 삼 년 선배 형과 자취하던 때였다. 토요일 밤늦은 시간에 선배 친구의 친구가 어떤 여학생과 함께 찾아왔었다. 그는 선배 친구로부터 소개받아 통성명하고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의 친구였다.

  “통금시간 땀새 집에 갈 수가 없어서 그란디 으짜끄나 미안해도 쪼까 자고 가먼 안 되것냐?”

  그 말을 들은 선배는 난감한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짜것냐. 이 시간에 딱히 갈 데도 없으 거인디…….”

  막무가내로 단칸 자취방에 들이닥쳐 간청하는 친구의 친구를 내칠 수 없어 선배는 마지못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통행금지가 있던 때였다. 이내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렸고 어쩔 수 없이 손바닥만 한 자취방에 네 사람이 누웠다. 가장자리엔 양호가 그 옆엔 선배가 선배 옆엔 선배 친구의 친구가 눕고 그 옆에 여학생이 누웠다. 작은 창문으로 새어드는 빛이 있지만, 전등이 꺼진 방안은 어둠으로 꽉 차 있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양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양호는 실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잘 보이진 않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다 걸 느낄 뿐이었다.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누군가 외국 잡지에서 뜯어와 몰래 돌려 보던 야사가 떠올랐다.

  “어디 어디 나도 쫌 보자.”

  서로 빼앗아 킥킥거리며 보았던 흑백사진 속 남녀의 모습이 지금 이 방 안의 상황과 오버랩 되었다.

  “야! 선생님 오신다.”

  누군가의 나지막한 외침에 57명이나 되는 반 아이들이 순식간에 후다닥 책상에 앉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그때처럼 양호도 자는 척 시치미를 떼고 누워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지척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거친 숨소리는 어둠을 휘저어 황홀한 별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곧 터져 버릴 것 같은 충만함으로 우뚝 서게 했다. 격정의 시간이 지나고 여학생은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방을 나섰고 그사이 선배는 선배 친구의 친구와 무언가 타협을 하는 듯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선배 친구의 친구와 그녀는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자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이부자리엔 진홍빛 하트가 그려져 있었고 선배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그 흔적 위에 파란 잉크를 덧칠했다. 마치 유치원 아이가 색칠 공부를 하듯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선배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아들의 자취방에 식량이며 찬거리를 가지고 오셨다가 주무시고 가시곤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이불을 빨아 말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선배는 임시방편으로 잔꾀를 부린 것이었다. 이불이 왜 이러냐고 물으면 공부하다가 잉크를 쏟았다고 말씀드릴 참이었을 게다.

  꼬두메에서도 양호는 비행기를 날렸다.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날리던 종이비행기는 양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땐 실제 비행기에 가깝게 진화되어 갔다. 모나미 볼펜에 칼로 홈을 내어 앞날개와 꼬리날개를 붙였다. 볼펜의 까만 끝머리에 프로펠러를 만들어 달았더니 진짜 비행기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앞날개 오른쪽 끝에 실을 길게 묶어 잡고 풍물놀이패 상모 돌리듯 시계방향으로 서서히 돌렸다. 그러자 프로펠러가 돌며 마치 단발 프로펠러 비행기처럼 크게 원을 그리며 잘도 날았다.

밑 빠진 통장

  그리 길지 않은 학창 시절과 가난한 청년 시절을 지나서 처가 쪽 반대를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양호는 유치원 교사였던 연이와 결혼하게 되었다. 신혼 초 광주에서 사진 관련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일요일에 쉰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당하고 다시 직장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 무렵, 마치 시골에 사진관 하나가 나서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인수자금이 없던 양호는 어렵사리 대출받아 얼마간의 대금을 치르고 사진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변변한 사진 장비가 없는 상태로 인수한 사진관인지라 조금 돈이 모이면 장비를 사야 해서 도무지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사이 살림은 늘지 않고 식구만 늘었다. 산아제한을 정부 시책으로 펼치던 때라 셋째 딸을 낳았을 땐 주위의 핀잔도 많이 들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 셋째 딸과 여섯 살 터울의 아들을 낳았다. 식구가 많으니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모르긴 해도 궁핍한 살림 꾸려가느라 아내가 남몰래 많이 울었을 것이다. 양호의 처가는 시골에서 상당한 부농이었지만 결혼 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무리 어려워도 양가의 부모든 형제든 그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양호 또한 막막할 때마다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에서 남몰래 흘린 눈물이 적지 않았다. 반대한 결혼의 경험이 있는 양호와 연이는 자녀들이 배필감을 골라 오면 절대로 반대하지 않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반대한 결혼의 폐해와 앙금은 오래가기 때문이었고 어쩌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2003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삼베 바지에 방구 빠져 나가대끼 잘도 빠져 나가네에. 난중에 4남매 우리 자석덜이 즉 아부지 밑 빠진 통장 사연을 알랑가 모르것어?”

양호의 실없는 푸념에 그의 아내 연이가 정색을 하며 화답했다.

  “알제 모를 랍디여. 즈그덜이 애래서부터 다 보고 커왔는디. 넘들 다 입고 댕기는 메이커 옷을 사도라고 조르기를 합디여, 용돈 한 푼 헛트로 쓰기를 합디여? 요새 우리 아그덜 같은 아그덜 없어라.”  

  세 딸이 한꺼번에 대학생이던 해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시골 사진관에서 혼자 벌어서 한꺼번에 셋을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남들은 기적이라 하겠지만, 양호와 연이는 늘 은혜였노라 말하곤 했다. 밑 빠진 독처럼 구멍 난 자루처럼 채우고 또 채워도 통장은 늘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수업료, 기숙사비, 학교운영지원비, 수학여행비, 보험료에 전화요금 전기요금 기타 등등 같은 항목이 거의 세 번씩 줄기차게 빠져나가는 자동이체 통장이었다. 그 통장은 추수 끝난 들판처럼 허허롭고 늘 허기져 있었다.

드림 그리고 드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할아버지에게서 닭 잡는 법을 배우던 양호는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율포에서 사진관을 열게 되었고 35년여 세월을 사진과 영상 촬영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사진관이죠? 차밭 홍보영상을 만들려고 하는데 혹시 드론촬영도 가능 한가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 예. 거시기 저…….”

  양호는 갑작스러운 드론촬영 문의에 당황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지금은 드론이 없다고 했고 “그러면 할 수 없겠네요.”라며 전화는 끊겼다. 꽤 큰 일감을 놓쳤구나 싶어 한 동안 양호의 마음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2015년의 세상을 예견한 「백 투 더 퓨처 2」 (Back To The Future Part 2)라는 로버트 제머키스 감독이 만든 영화가 있었다. 1989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는 괴짜 과학자 브라운 박사가 미래로 가는 자동차 '드로리언'을 타고 시간 여행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발 끈이 자동으로 조여지는 운동화라든지 5D 영화, 영상통화, 전자안경 등 상당 부분이 현실 속에 실재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군사용으로 쓰여 오던 드론이 방송에서 종종 활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양호의 관심은 늘 드론에 쏠려 있었다. 민간용으로 대중화되면서 가격이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선뜻 갖추지 못했던 드론이 유난히 아쉬운 날이었다.

  “워찌게 하던지 드론을 사긴 사야 할랑 것이네.”
  양호는 넌지시 아내에게 드론을 사야겠다는 뜻을 내비쳐 보았다.

  “사얄 것 같으먼 사야제라. 사고 잡프먼 사씨요. 카메라든지 뭣이든지 살라고 맘 묵으먼 꼭 사고 말듬마.”

  연이의 말투에는 썩 내키지 않는 그의 속내가 묻어나 있었다. 드론을 값비싼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가 생각혀 봐도 장비 욕심이 솔찬하긴 한디, 산 것 마둥 나같이 달게 잘 씨여 묵는 사람도 밸라 없을 것이여?”

  양호는 너스레를 떨며 아내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편치 않은 심사를 다독이려 애를 썼다.

  “저번 참에 4K 비됴 카메라 샀을 때 맨키로 금방 본전얼 뽑아 불 것 잉께 염려 붙들어 매고 워찌게 한 번 해보세.”

  양호의 말속에 다소 허풍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어서 연이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소년 양호가 노년이 되어 갈 무렵에야 하늘을 날고 싶었던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소년의 꿈, 드림은 드론이 되어 드디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땅 위에서 쳐다만 보다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별천지였다. 해와 구름과 달과 별 새들이 보아왔을 풍경, 꿈에 그리던 그 그림을 양호는 지금 보고 있다. 꿈속에서 하늘을 날던 닭처럼 양호의 드론은 하늘 높이 날며 나무의 정수리와 집들의 지붕, 눈에 뵈는 온갖 것을 조종기에 붙은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전에 양호가 보아왔던 풍경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물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과 느낌이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드론은 양호에게 보여주고 있다. 드론을 날리며 양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꿈의 주인이 누구든 어떤 꿈을 꾸든지 꿈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므로.

#달구똥_김현호_단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