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

쑥부쟁이의 전설

참빛사랑 2012. 11. 1. 15:35

 

 

쑥부쟁이의 전설/애광 김현호

 

열한 명의 자녀를 둔
가난한 대장장이의 큰딸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의 딸이라고
쑥부쟁이라 불리던 어여쁜 처자

 

산에서 쑥을 캐던 어느 날
사냥꾼에 쫓기던 상한 노루
숨겨주고 싸매어 주었다네

 

노루 쫓던 사냥꾼 멧돼지 함정에 빠진걸
칡넝쿨 내려 구해 줬는데

한양 사는 박재상의 아들이라며
내년 이맘때 꼭 오겠단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가을이 오니
사냥꾼 만났던 그 산에서
하루도 거름 없이 기다렸는데
한양 쪽 바라보며 기다렸는데

 

푸른 잎이 기다림에 지쳐 노래지고
그리움에 애가 타 빨갛게 물들어 가도록
그렇게 여러 번 가을이 지나가도
꿈에도 그리던 임은 오지를 않고
그 사이 두 명의 동생이 더 생기고
어머니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네

 

걱정이 낙엽처럼 쌓여만 가던 어느 날
쑥부쟁이 산에 올라 간절히 기도하는데
몇 해 전 구해 준 노루 나타나
노란 구슬 세 개 담긴 연보랏빛 주머니 건네주며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 빌면 이뤼진다 했네

 

우리 어머니 병을 낫게 해 주세요
신기하게 병이 나았고
노루가 준 주머니 속 구슬을 물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냥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사냥꾼이 나타나 잘못을 빌며 같이 살자 했는데
사냥꾼은 이미 결혼하여 처자가 있었다네
사냥꾼을 처자에게 돌려보내야겠다 맘먹고
마지막 남은 구슬 머금고 소원을 빌었다네

 

그리움 삭이며 쑥을 캐던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 떨어져 숨이 졌는데
그 산등성이에 이전에 없던 연보랏빛 고운 꽃이
무성하게 자라났다네

 

지금도 가을이 오면 쑥부쟁이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산등성에서
가녀린 목을 길게 빼고
임을 기다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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