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

장수풍뎅이의 일생

참빛사랑 2008. 9. 5. 11:12

  

장수풍뎅이의 일생 / 애광 김현호


벌거숭이 애벌레로

너를 처음 입양했을 때

사실 좀 징그러웠다


썩은 나무를 갉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너를

하루에도 수 없이 들여다 보다

정이 들어 사랑스러웠다


사랑의 열매

알로 보름이 지나며

일령 애벌레로 한 달

이령 애벌레로 또 한달을 지나면

허물을 벗고 삼령의

토실한 애벌레로 여섯 달을 살면서

비옥한 땅

초목의 흐뭇한 양분을 위하여

생의 사분의 삼을 몫 지어 살았다

 

우화를 거쳐

장수처럼 힘센 성충으로

윤기 흐르는 검은 외투에

창공을 날 수 있는 멋진 날개를 달고

나무의 진액과 과일을 먹으며

성스러운 허니문을 지나고 나면

종족보존을 위하여

십여 개의 알을 남기고

흙으로 돌아간다


썩은 나무를  뜯어 먹고

팥알만 한 거름을 수 없이 만들어 내는

천연비료공장이었다

쓰러져 죽어 흉물스런 나무를

흙으로 되돌리는 위대한

환경미화원이었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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