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을 대표하는 문정희, 송기원, 이창수 시인의 작품이 녹아든 문학극
「사랑이 되어 사라지다」는 문정희의 파꽃길, 율포의 기억, 노래
송기원의 찔레꽃, 이창수의 공터, 신림마을 등을 배우들의 낭송과 연기로 만나볼 수 있다.
도시의 삶에 지쳐가던 주인공이 기억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오는 날
보성 바닷가로 내려가 꿈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우리들 모두가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파꽃길 / 문정희
흰 파꽃이 피는 여름이 되면
바닷가 명교리에 가보리라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 냄새를 따라가면
이 세상 끝에 닿는다는 명교리에 가서
내 이름 부르는 바다를 만나리라
어린 시절 오줌을 싸서
소금 받으러 가다 넘어진 바위
내 수치와 슬픔 위에
은빛 소금을 뿌리던 외가 식구들
이제는 모두 돌아가고 없지만
서걱이는 모래톱 속에 손을 넣으면
차거운 눈물샘은 여전히 솟으리니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 냄새를 따라가서
그리운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리라
넘실대는 여름바다에
푸른 추억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율포의 기억/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 밭 때문이었다
뻘 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 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노래 / 문정희
나와 가장 가까운 그대 슬픔이
저 강물의 흐름이라 한들
내 하얀 기도가 햇빛 타고 와
그대 귓전 맴도는 바람이라 한들
나 그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그대 또한 내 꿈을 열 수 없으니
우리 힘껏 서로가 사랑한다 한들
공터/이창수
이제 참회는 남의 것
나는 더이상 빌 죄가 없다
바람에 허리를 꺾인 자목련
몸 구부린 채
없는 죄까지 고하고 있지만
밤새 마신 술로
속엣것 다 토해내
더 이상 빌 죄가 없다
사나운 마음 전지하고 남은
텃밭 푸성귀도 시들어
내 공터엔 희미한 그림자만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나
누군가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다
이 계절이 슬퍼서도
시절이 괴로워서도 아니다
그건 더 이상 참회할 죄가
남아 있지 않아서이다
신림마을/이창수
종점 지나 신림마을이 있다
신림마을은 나의 빈약한 상상의 세계
그 너머에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신림마을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신림마을의 진입로인 신림교 앞 공터엔
누구나 마을로 들어올 수 있다고
자귀나무가 분홍등 켜고 있다
종점으로 이사 온 뒤로
내가 꿈꿀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꿈꾸지 못하는 시간을 조금 떼어내
종점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신림마을은 없다 대낮에도 우는
소쩍새가 내게 속삭였다
새벽이면 더럽고 축축한 베개를 껴안고 생각한다
지금 자귀나무 가지마다
찢어지게 걸려 있는 등불을 따라가면
더 이상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
이 궁벽한 산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찔레꽃 / 송기원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 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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