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몽(夏夢) <시가 흐르는 행복학교 소설 과제>
김현호
제1부 차 만들기
삼복은 지났지만, 차밭엔 아직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싱그러운 찻잎으로 가득한 다원 한편에는 배롱나무꽃이 곱게 피어 있고 하늘은 쪽빛으로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이토록 아담한 다원이 여태껏 내 눈 밖에 숨어 있었다니.
황금명차를 생산하는 보향다원, 난생처음 와 보았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차나무와 친숙한 보성사람인 까닭이리라.
매미들은 여기저기 나무 그늘에서 구애의 노래를 부르고 다원 안주인은 능숙한 손길로 대바구니에 찻잎을 따 담았다.
이내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도 그럴 것이 가만히 있어도 주르륵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날 찻잎을 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바구니 가득한 찻잎을 가지고 차 덖는 가마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찻잎을 딸 때 적당한 잎으로 골라 따지만, 이물질이나 좋지 않은 잎은 다시 한 번 골라내는 선별작업을 거친다.
섭씨 300도의 가마에 찻잎을 넣고 덖는다. 찻잎의 상태에 따라 덖고 비비기를 너덧 번 반복해야 한다. 횟수를 더해 갈 때마다 솥 온도는 섭씨 50도씩 내려줘야 한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찻잎이 익는다. 타지 않도록 부지런히 가마 속의 찻잎을 뒤집어 준다. 하얀 김과 함께 향긋한 차향이 피어오른다. 다인들은 환장할 이 향기 때문에 힘들어도 차 덖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익힌 찻잎을 솥에서 꺼내 멍석에 널어 식힌다. 빨리 식혀 줘야 찻잎이 녹색을 띤다. 식힌 찻잎은 한 움큼씩 모아 쥐고 천천히 비빈다. 덖고 비비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찻잎에서 수분이 빠져나가고 오래 두고 우려 마실 녹차가 만들어진다.
가마솥 열기에 버금가는 열정 없이는 한 줌의 차도 만들 수 없고 찻잎은 뜨거운 솥에 데고 비빔 당함 없이는 향기로운 녹차로 거듭날 수 없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듯 환란과 역경은 인생을 더욱 향기롭고 아름답게 하는 관문인지도 모른다.
제2부 다도시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녀 셋이 찻자리에 내려앉았다.
쪽 찐 머리에 비녀를 꽂은 단아한 모습으로 찻상 앞에 다소곳한 여인들.
한 여인은 차를 내는 팽주요, 두 여인은 손님 역이다. 셋은 공수 배례를 한다. 공수 배례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배에 대고 공손히 절을 하는 것을 말한다. 차를 내는 여인은 찻상에 덮여 있는 다포를 소리 없이 접어 왼쪽 퇴수기 옆에 두고 물 끓이는 주전자인 탕관을 들어 숙우에 물을 따른다. 숙우는 찻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기 위한 그릇이다.
숙우를 들어 다관에 물을 따른다. 다관은 차를 넣어 우리는 주전자를 이르는 말이다. 탕관을 들어 차 우릴 물을 숙우에 붓는다. 차 우리기에 적당한 온도로 식히기 위해서이다.
일련의 과정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다관을 들어 찻잔에 물을 붓고 잔을 덥힌다. 다관의 뚜껑을 열고 차통을 들어 다관에 차를 넣는다.
차 우릴 물을 다관에 붓는다. 차를 우리는 동안 찻잔의 물을 퇴수기에 버린다. 더 좋은 것을 채우려면 잔이든 마음이든 비워야 한다.
차가 향기롭게 우러나면 다관을 들어 왼쪽 잔부터 세 번에 나누어 따른다.
마지막 한 방울 옥로가 담긴 잔은 찻자리 연장자의 몫이다. 차를 따를 때 다관 주둥이에 마지막으로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는 한 방울의 차를 옥로라고 한다. 옥로가 담긴 찻잔을 어른께 드리는 것은 우리 전통의 예이며 어른 공경의 표상이다.
찻잔 받침에 찻잔을 올려 보조찻상에 놓는다. 차를 마실 때는 전통과자나 떡 같은 간단한 음식을 곁들이는데 이를 다식이라 칭한다. 다식 접시의 뚜껑을 열고 공수 배례 후 "차 드십시오!“
찻잔을 받쳐 들고 색을 본다. 잔속에서 에메랄드빛 바다가 출렁인다.
향기로운 차향이 다실에 가득하다. 잔에 입술을 맞대어 차 맛을 본다. 맨 처음 혀끝에 쓴맛이 와 닿는다. 이어서 떫은맛 신맛 짠맛 단맛, 차의 오미(五味)가 입안에 어린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 했던가?
귀로는 찻물 끓이는 소리를 듣고 코로는 차의 향기를, 입으로는 맛을, 눈으론 차와 다기를,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느끼는 것.
제3부 아담
보성녹차 이야기 10여분짜리 영상을 편집하며 주마간산 격이라도 차 만들기와 다도를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촬영은 잠깐, 혹은 일정한 시간에 끝나지만, 편집은 용도와 품질에 따라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기 위한 영상미를 추구하는 편집은 기본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나는 30여 년을 업으로 삼고 영상작업을 해 오고 있다. 때론 지겨울 법도 하지만 사진보다 더 흥미를 느끼는 분야이고 나와 평생을 같이 가야할 좋은 친구이다.
밤늦게까지 편집을 하느라 새벽녘에서야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났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밤새 편집한 영상물을 USB 메모리에 담아 들고 차를 몰아 군청으로 향했다.
담당 직원을 만나 편집한 영상을 모니터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랫도리가 허전했다.
어라~ 이런.
밤잠을 거의 설친 데다 허둥지둥 나오느라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급한 대로 차에 있는 녹색 바람막이 점퍼를 허리에 두르고 소매를 맞잡아 묶었더니 임시방편은 되었다.
언제부턴가 잠잘 때는 늘 에덴동산 아담의 모습이었는데 꿈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새벽잠에서 깬 나는 후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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