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량을 보고 듣고 담고 품다」
2018년 11월 3일 보성문인협회(회장 이남섭) 문학기행 - 득량면
아침 9시 30분 보성문화원을 출발하여 기럭재, 김구선생 은거지 쇠실을 지나 최대성장군의 충절사, 득량역, 강골마을, 예당평야 방조제, 초암정원(전남 민간정원 제3호)을 돌아보았다.
보성문학회에서는 매년 가을, 보성군 12개 읍면 중 한 곳을 정해 문학기행을 해 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문덕, 복내, 율어, 겸백, 노동, 회천면을 둘러보았다.
득량역/애광 김현호
아홉 살 무렵이었다 묵산에서 약방 하시던 아버지 심부름을 갔다
그리 많지 않은 돈 보자기에 감아 허리에 질끈 동이고 자전거를 탔다
28인치 커다란 자전거 안장 밑으로 발을 끼워 페달을 밟았다 울퉁불퉁 흙먼지 길 멍매 지나
가파른 새태를 넘고 고리태 내리막길 따라 마천 지나서 드디어 득량역에 다다랐다
윤이 아재 역전자전차포에 자전거 맡겨 놓고 반 표를 샀다
이윽고 시커먼 열차가 돼지 멱 딴 소리를 내지르며 역에 도착했다
내려야 할 사람들 내리고 표를 든 사람들 새로 태웠다
칙칙폭폭 가쁜 숨 몰아쉬며 기럭재 터널 지나 도착한 보성, 보성역에서 멀지 않은 곳 민생약방에서
아버지가 적어준 쪽지 내밀어 약을 떼었다
연착한 열차를 타고 다시 득량역에 내렸을 땐 어두운 밤이었다
자전차포 문이 닫혀 맡겨둔 자전거 찾을 수 없고 홀로 25리 밤길 걸어 집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역사로 들어가 긴 나무 의자에 몸을 눕혔다
날이 밝으면 맡겼던 자전거 찾아 집에 갈 요량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 쐬러 나온 아가씨 나를 발견하고 사연 물었다
여차여차하였더니 한데서 자면 못 쓴다며 미장원에 딸린 자기 방에 데려가 나를 눕혔다
나는 이내 곤한 잠이 들었다 전화도 없던 시절 밤이 맞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 찾지 않는 까닭 있었다
밤이 늦으면 재워 보내는 거로 호형호제하던 아버지와 윤이 아재 사이에 미리 약조되어 있었는데
깜빡 잊고 퇴근해 버린 것이었다
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작은 오봉산 너머로 환하게 새날이 밝아 있었다
하룻밤 동침한 그때 그 아가씨 지금은 어느 고운 하늘 아래 살고 있을까?
(현재, 득량역 주변은 옛 모습을 재현하여 7080 추억의 거리로 조성 되어 있다)
*묵산 : 회천면 천포리에 속한 마을
*멍매 : 회천면 천포 삼거리(지금은 사거리)에서 가까운 범바위 아래쪽
*새태 : 회천면 화죽리 회동마을
*고리태 : 득량면 정흥리에 있는 마을
*민생약방 : 지금의 보성새마을금고 건너편에 있었던 약방으로 당시 전남일보 보성지국도 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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