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똥/애광 김현호
할아버지께서
그 아이를 부르셨다
닭장 안에 들어가
알 좀 꺼내 오너라
늘 해오던 그 일은
날마다 그 아이의 몫이었다
철망으로 둘러친 닭장
그 안에 작은 문이 달린
닭들의 숙소가 있었고
암탉은 그 안에 알을 낳았다
달구똥을 밟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땔 수 없는 닭장에서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알을 꺼내 오는 일이
수말스런 그 아이에게도
때로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 알은 이듬해 봄
병아리가 되기도 하고
어쩌다 맛보는 더운 밥에 날 달걀을
깨 묻어 비빈 고소한 비빔밥
입안에 살살 녹는 계란찜이 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의 어깨너비가
닭의 안방으로 통하는 문보다
넓어졌을 무렵
그 문에 어깨를 걸친 채로
한 꾀를 내었지
할아버지 인자 내 어깨가 넓어서
못 들어가것어 봐봐-
할아버지는
미소 띤 얼굴에
긴 수염을 어루만지며
얘야 어깨를 모로 돌려라.
*달구똥 : 닭똥의 전남, 경남의 방언
*수말스러운(수말스럽다) : 고분고분 하다. 순종하다의 의미로 쓰이는 전라도 사투리.
'일반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송회가(巨松會歌) (0) | 2009.09.20 |
---|---|
보성강하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45호 지정) (0) | 2009.09.02 |
참새미 (0) | 2009.08.26 |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시) (0) | 2009.08.21 |
거송 (0) | 2009.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