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포팔경(泉浦八景) 애광 김현호
천포만 개펄
백악산 품에 안겨 출렁이다가
썰물 지면 드러나는 드넓은 개펄
실눈 뜨고 하늘 보는 조개들의 옛이야기
쏙이며 촐뱅이 바지락 꼬막
아낙의 날랜 손길, 뻘 묻은 손에 잡혀
갯바구니 구물구물 가득한 갯것
짱뚱어 뛰노는 느긋한 천포만.
*천포만 : 득량만의 일원으로 천포 앞바다를 이르며 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면 개펄이 넓게 드러난다.
*촐뱅이 : 꼬리 달린 조개를 일컫는 토속어. 옛날 천포 앞바다에 쌔고 쌨었는데 지금은 흔치 않다.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꼬리는 따로 떼어 초장에 버무려 먹기도 했다.
백바우
흥양에 돋는 해 가장 먼저 받아 안고
하얗게 빛나는 백바우가 벼바우
혹자는 볕바우라 하네
석 달 열흘 궂은 날 이어진다 해도
백바위 틈새로 햇빛 비취듯
쨍한 날, 볕 들 날 있으리라
어둠 그늘 걷히고 백주같이
환하게 빛나는 날 있으리라
사노라면.
*백바우 : 보성군 회천면 객산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로 벼바우 또는 볕바우라 부른다.
*흥양 : 고흥의 옛 이름.
깟바우 해변
객산이라 청포 마을
갯가에서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노라면
구멍 숭숭 태곳적 바위
눈길 잡아끌고 올록볼록 거북 등
무늬 고운 암반 발아래 깔려있네
형형색색 갯돌 해변
사그락사그락 한참을 걸어가면
세월과 파도와 비바람의 콜라보
고기 잡는 아버지
철모르는 딸도 살지 않는 빈집
고즈넉한 오두막 한 채.
*깟바우 : 객산 청포 마을 해변에서 서쪽으로 1. 26km 지점에 있는 초가집 혹은 갓 모양으로 보이는 바위.
필봉
오봉산 줄기 남으로 뻗어오다
필봉으로 깃대처럼 우뚝 서서
득량만을 바라다본다
필봉 아래 펼쳐진 수려한 풍광
필봉 들어 그리려다
역부족을 탄하노라.
*필봉 : 객산마을 앞에 있는 산, 뾰족한 봉우리. (해발 183m)
무지개 폭포
무지개 뜨는 날엔
어김없이 무지갯재
일곱 빛깔 선연한 무지개 뜬다
폭포에서 천포만까지
커다란 반원 그리며
선녀의 목욕물 빨라 올린다
난조시 골짜기
물이 모여 흐르다가
몰시바우 다다라 하얗게 부서지며
무지 아름다운
무지개로 피어나는
무지개 폭포.
*무지개폭포 : 회천면 연동마을과 객산마을 사이 무지갯재에 있는 폭포로 몰시바우 폭포라고도 함. 옛날 5월 단옷날이면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 하여 인근 주민들이 찾아와 물을 맞곤 했다.
*난조시(卵鳥時) : 원산마을에서 객산마을 사이의 골짜기로 새가 알을 낳아 품고 있는 형국. 이 골짜기의 물이 무지개 폭포로 흐른다.
구시뱅이 낙조
천포만 너른 바다
저녁노을 드리우니
아련한 첫사랑
그리움으로 여울진다
저 장엄한 태양의 뒤태
어둠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임의 사랑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리니
밤 지나고 새날 오면
눈 부신 햇살 한 아름 안고
환한 미소로 오라, 사랑이여
노을빛 사랑이여!
*구시뱅이 : 탕건바우 남쪽 골짜기, 지형이 구유 형국이라 하여 구시뱅이라 부르며 보성 지중해펜션 부근이다.
눈바우
섬처럼 누운 바위
모난 데 하나 없이
두루뭉술 정겹고
비바람에 씻기고 패인
바위 마루 둠벙엔 눈물
고였내라
어린 시절 하굣길
등허리에 질끈 책보 동이고
조심조심 기어오르던 바위
옛 지서 낙서 많던 백회 벽
초소 같은 건물 간데 없고
북풍 막이 초목만 무성하구나
샘개 옛이야기
오롯이 간직한 채
시방도 여기 비스듬히 누워
파도치는 천포만
바라다본다.
*샘개: 전남 보성군 회천면 천포의 옛 이름.
*눈바우 : 회천면 천포리 와교에 있으며 누워있는 바위라 하여 눈바우라 부른다. 옛날 눈바우 위에 지서가 있었는데 여순사건과 6·25 전쟁 통에 많은 젊은이가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쟁골재
보성장 설 때마다 원천포 사람들
이고 지고 넘나들던 쟁골
장에 가신 엄마보다
식어 빠진 붕어빵 더 기다린
철부지였네
나 어릴 때 두어 번
엄마 손 잡고 넘던 그 길
학창시절 토요일 밤
금성여객 막차 떨군 날이면
홀로 넘던 오싹한 밤길이었네
장에 갔다 오는 길 쟁골 넘으면
천포만 쪽빛 바다 한 눈에 들고
짭조름한 해풍 코 끝에 어리는
고향 앞이네.
*쟁골재 : 회천면 화죽리 서동마을 화죽제(저수지) 뒤에서 보성읍 봉산리 노산 마을로 넘어가는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