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

덤벙이를 만나다

참빛사랑 2015. 2. 23. 00:49


덤벙이를 만나다  /애광 김현호


너희는 흙이니 흙이 되리라

태초의 토기장이

말씀하셨지.


그 흙으로 도공은

선 고운 그릇을 만들어

우윳빛 백톳물에 덤벙 담갔다가

가마 속에 넣는다


천도 넘는 불길이 만들어 낼

사발의 모양과 빛깔을 그리며

열여섯 시간을 꼬박 

장작불을 지피는 도공의 베적삼엔 

소금 꽃이 핀다


뜨거운 불길 사위고

도공의 눈에 든 다완엔

아우른 손 같은 겸손함과 

투박한 듯 유려한 멋이 흐른다


찻물을 부으면 

다완은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

꽃이 피어나듯 무늬와 빛깔이 

시공 속에 자리할 때

분칠한 덤벙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리타에 끌려가 일본의

도조(陶祖)가 된 이삼평의 예혼이

아른거린다

심당길 박평의 

조선 도공의 얼과 숨결이 

사발 주변을 맴돈다


내가 덤벙이를 본다

덤벙이가 나를 본다

첫 대면인데 이 기시감은

무엇일까?


연륜이 만들어 낸 

옹이와 나이테처럼

세월이 흐르고 손때가 묻을수록

쓰면 쓸수록 아름다움 더해 가는 신비한 그릇

찻물 따르면 그림 그려 화답하는

살아 있는 다완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보성덤벙이에 덤벙 빠져든다

세월따라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자못 궁금한 마음을 품고.




*보성덤벙이 :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분청사기 도자기법으로 400년 동안 끈겼던 맥을 찾아 도예가 송기진이 재현 하였음. 

                조선시대 보성에서 만들어진 보성덤벙이는 임진왜란 전후에 일본으로 건너가 호조고비끼(寶城粉引)라 불리며 일본에선 국보급 최고의 찻사발로 평가받고 있다.  

*이삼평(李參平, ? ~ 1655년 9월 10일)은 조선 시대의 도공이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 규슈로 끌려가 아리타 자기의 모태를 만든 인물로 알려졌다.

*심당길((沈當吉) : 임진왜란 때 시마즈요시히로(島津義弘)에 의해 40여 여인들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

                  그의 후손 심수관의 이름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도자기의 흐름과 기예를 계승 발전시켜나갔다.

*박평의 : 심당길과 같이 납치되어 갔던 도공

*아리타(有田) :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도기의 본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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